사무엘상

사울의 최후

ereducation 2013. 11. 19. 10:39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해 있는 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 총공격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은 동족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사울왕은 엄청난 블레셋군을 보고 두려워서 떨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하나님에게 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꿈으로나 환상으로나 예언자를 통해서나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왜 사울 왕의 기도에 침묵하셨을까?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왕인 자신이 드려 하나님 말씀을 거역 하였고

아말렉족속을 멸절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존대하지는 못할 망정 다윗에게 먹을 음식과 칼을 주었다고

제사장 일가를 몰살하였으며 평상시 하나님께 드리던 예배까지 중단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는데 열을 올리고 온 국력을 소모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청난 블레셋 군대의 침략을 받고 위기에 빠지자 이제야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사울과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전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도 살지 않고 하나님과 전혀 무관하게 세상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세상을 즐기며 살다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문제(질병, 자녀, 경제)가 생기면

울며불며 후회하고 회개하며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는다.

그래도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세상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버린다.

부모님은 여러분들의 죄를 알고 속아 주시고 모르고도 속아주신다. 왜 자식을 사랑하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식을 망치는 일이다. 분명히 죄에 대해 묻고 지적하고 용서해주되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훈계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식을 죄와 분리시키고 단절시키는 것이고 그것이 지혜로운 부모님이신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급할 때만 찾는 기도, 삶에 하나님이 없는 기도, 손에 죄가 가득한 기도,

진정한 회개가 없는 기도는 절대로 들어 주시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이 없자 사울왕은 또다시 하나님에게 엄청난 죄를 짓고 만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어떻게 될지, 또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점치는 점쟁이를 찾아 갔다.

하나님의 자녀가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영적 간음행위이다.

20: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0: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래서 사울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점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신접한자와 박수 무당을 쫓아내고 멸절시켰었다.

그런데 자신이 정한 법을 자신이 어길 수가 없어서 변장하여 점쟁이를 찾아갔고

자신이 왕이란 것이 발각되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결코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처럼 연약한 존재이다. 한번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나면 헤어나오지도 못할뿐더러

그 죄를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연속적으로 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점을 치는 것은 못하게 하시나? 점을 치는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다.

무당들 자신들도 자신이 스스로 무당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다.

귀신들이 눈에 보이고 잠도 못 자고 불면증이 오고 또 계속 몸이 아프고 해서

거부하고 거부하다 어쩔 수 없이 귀신을 받아 들인다. 그것을 접신이라고 한다.

최근 화성인에 처녀 무속인이 나왔다.

24세 연봉 1억을 벌어 들이고 미국의 오클랜드 대학교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4개국어를 할 줄 아는 완전 미녀인데 결혼 하고 싶다고 TV에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연애를 할 수 있어도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인생들이 아닐 수 없다.

접신한 무당이 가장 먼저 하는 행위가 작두를 타는 것이다.

손만 대여도 살이 갈라지고 피가 금방 날 정도로 날카롭게 칼을 갈고 그 위에 올라가 춤을 춘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 접신을 하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그래서 귀신이 자신의 몸에 들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주술행위가 바로 작두타기인 것이다.

그리고 점치러 온 사람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죽은 부모라든지 죽은 자식이 평상시에 하던 말과 행동들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러면 점치러 온 사람들이 기겁하고 놀라서 끌어안고 울고 불구 난리를 피운다.

그런대 그것은 죽은 부모형제나 친지가 아니다.

그들이 살아 생전에 그들 속에 들어가 괴롭히던 귀신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들도 때로는 미래를 예측하고 장례 일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므로 점치는 것과 무당이 굿하는 모든 것은 다 귀신들의 놀음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놀아나는 것이다.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에 잘나고 사회의 지도층들이 더 귀신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러 다니는 추세이다.

포스코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공장을 새로 짓고 돼지머리 올려 놓고 제사를 지낸다.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할 때에도 연기자들이 돼지머리에 돈을 꼽고 절을 하면서 대박나기를 기원하고 가수들이 자신의 음반을 제작할 때 귀신의 소리가 들리거나 귀신을 보면 대박난다고 한다 심지어는 국회의원 선거나 대선에서도 점쟁이를 찾아가 당락을 물어 보기도 한다.

인간이 그 정도로 연약한 존재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도 없다하고 귀신도 없다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관련된 과거나 자신에 대해 잘 맞추는 용한 점쟁이가 있다면 자신의 전재산도 같다 바치면서 머리를 조아린다.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점쟁이들은 고양이 앞에 쥐와 같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점쟁이 안에 있는 귀신들은 꼼짝하지 못하고 숨어 한마디 말도 못하고 슬슬맨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인 것이다.

점쟁이를 찾아간 사울은 뜻하지 않게 죽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사울 앞에 나타난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예언하였다.

너와 너의 아들들은 내일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다윗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성경 학자들은 2가지 견해로 나뉘어 진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영혼이 귀신의 사주를 받는 점쟁이의 말에 죽은 사무엘의 영혼이 나타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점쟁이 속에 있는 귀신이 사무엘 흉내를 낸 것이라고 하는 견해와

또 다른 견해는 점쟁이가 귀신을 불렀는데 천사가 귀신을 몰아내고 대신 나타나 사울에게

다시 한번 사무엘의 말을 전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분명히 사무엘이 말하였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견해 입니다.)

어떤 해석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아무튼 귀신에게 점을 치는 것은 옳지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간음과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랑 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만을 남편으로 여기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라야 한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교재하지 않고 귀신과 교재하고 귀신의 말을 듣는 것은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음란한 아내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미래가 궁금한가? 그럼 누구에게 물어 보면 되는가? 하나님께서 다 일러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을 복되게 하신다.

성공의 삶을 살고 싶은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면 행복하고 성공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

예배에도 공부에도 성실한 사람이 되어라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나 하나님을 위한 일이나 최선을 다해 열심을 다해라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고 확실한 보증 수표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불로소득으로 졸부나 벼락 부자를 만들어 주지 않으신다.

모든 것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싫컨 놀기만 하다 어떻게 성적이 상위권에 올라갈 수 있는가?

상위권에 올라가려면 힘든 과정을 거치고 견뎌내고 노력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집사람의 친구 딸이 시내 고등학교에서 1,2학년 때 국영수사과 주요과목을 올백 받았다.

전교 1,2등을 다투었다. 그러나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신이 왜 밥만 먹으면 공부해야 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정신적 방황을 하였다.

그래서 중요한 고3시기를 망쳐버렸다 한달에 백만원이 넘는 과외를 받고서도 금번 수능을 망쳐버렸단다. 그래서 서울의 3류 대학 정도 밖에 못 간다고 그 부모가 한탄하였다.

그런가 그 아이에게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꿈과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전교 10등 안에 드는 상위권이 아니고 일류 대학에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중심을 잡고 꿈을 항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때로는 힘들고 지쳐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다.

물론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다.

내가 이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하고 살며, 무엇 때문에 살며 누구를 위해 살지

삶의 의미와 동기를 부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에게 죄를 짓고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으려고

또 다른 죄를 짓고 그 결과 사울은 어떻게 되었나?

사울와의 군대는 하나님을 외면 하였다. 하나님께서도 사울왕의 군대를 외면하였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해제된 이스라엘은 밀물처럼 밀려드는 블레셋 군대를 누구도 나서서

막을 수 없었다. 추풍낙엽처럼 군사들이 나가 떨어지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사울왕 자신도 결국 화살을 맞고 이방인의 손에 포로로 잡혀 죽게 될 지경에 이르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죽고 난 이후에도 수치를 당하였다. 갑옷은 전리품으로 전국에 전시 되었고 머리는 잘리고 몸 둥아리는 성벽에 못 박히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모습은 비참하다.

그들에게 삶 가운데에서 진정한 행복이 없다. 참 기쁨과 참 즐거움과 참 만족이 없다.

삶 자체가 고독하고 외롭고 힘들고 고단하고 고통스럽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하나님을 끝내 거부하는 자는 지옥 불 구덩이로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울과 같은 어리석은 길을 따라 걷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