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정복전쟁의 종결

ereducation 2013. 1. 21. 11:34

여호수아서는 정복전쟁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던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수많은 족속들이 몰려들어 가나안 땅을 차지 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아의 후손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각종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야만적 행위와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죄악 가운데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옛 땅의 주인이라고 비켜달라고 해서 비켜줄 족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친하여 함께 살 수도 없다. 그것은 가나안 거주민도 원치 않았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가나안 거주민과의 전쟁이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의 전쟁인 것이다.

여호수아서를 한편의 전쟁 드라마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감독자이시고 연출자이시며 프로듀서(PD)이시다. 그리고 믿음의 용장 여호수아가 주연이며 갈렙이 조연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엑스트라다. 강물이 넘치는 요단강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건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철옹성 여리고 성의 주변을 돌기만 하여 큰 함성과 나팔로 무너지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작고 초라한 아이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정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개입 하셔야 정복할 수 있다.

그리고 기브온족의 항복과 화친도 하나님의 묵인하에 이루어졌으며

가나안 남부지역의 여섯 나라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정복할 때도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사람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기록되었으며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태양과 달이 24시간 멈추게 하시면서까지 대적들을 물리치게 하셨다.

그리고 오늘 수11장에서 드디어 마지막 정복전쟁을 치루게 된다

하솔왕 야빈의 주도하에 가나안 북부지역의 모든 부족들이 연합하여 대항해 왔다.

그들은 병력이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으며, 전쟁장비인 말과 병기도 심히 많았다고 하였고

지리적으로도 메롬 물가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그때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오늘 본문 수11장에서의 전투 장면에서는 기적적인 사건은 없다.

즉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오로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만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친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양육하시고 훈련하시고 가르치시고 기르셨기 때문에

비로소 이스라엘은 강한 군사로 강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11:19에서 보듯이 항복으로 화친한 기브온 족속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가나안 거주민들을 말살하였다.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참하고도 참혹한 결과였다.

8절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 죽였다. 9절 마병과 병거는 불살라 버렸다.

11절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17절 그들의 모든 왕들을 모두 잡아 쳐 죽었다.

멸절하고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불살라 버렸다는 구절이 곳곳에 나온다.

원래 전쟁이란 잔인하고 비정하고 비참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철저하게 말살 시키셨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무자비 하신 분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많이 죽일 수가 있는가?하며

불신자들의 공격거리가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

인간들은 자신의 죄는 버리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죄를 용인하시거나 눈 감아 주시거나 모른 체 넘어가지 않으신다.

성경엔 허물을 덮어주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마라, 정죄하지 마라,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구절이 많다. 그것을 잘못 해석하면 죄 지어도 괜찮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다 같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탓할 입장이 못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정죄할 권한이 없다.

오직 판단하시고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가를 치루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죄의 대가는 살면서 치루게 된다.

만약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국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공의가 없는 세상은 지옥과 같다.

공의가 없다면 죄를 짓는 사람이나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나 구분이 없어진다.

그럼 누가 손해 보면서 의롭게 살아가려 하겠는가?

아마 이 세상은 악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최근 들어 정말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수원에 한 여성이 중국교포에 의해 끔찍하게 성폭행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시신을 280조각을 내어 비닐봉지 14개에 나눠 담아 훼손했다. 납치당한 여성이 112에 신고를 했으나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부부싸움 같다며 무심히 넘겨 버려 경찰총장이 사임한 상태다.

60대 노인이 피살되어 시신을 토막내어 쓰레기 봉투에 버려진 것을 발견하고 범인을 잡고

보니 남편이었다. 살인 이유를 들어보니 술먹고 늦게 들어 온다고 잔소리 했다고 그랬다고 한다.

영주에서 또 중2학생이 자살하였다. 사유 역시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동성 성추행, 왕따, 괴롭힘이 얼마나 심했으면 유서에 내 장례식에 오면 가만 안둔다고 적었다

고양에서는 17살 백모양이 친구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 당하면서 살려달라고, 경찰에 신고 좀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무시하고 계속 폭행해 결국 죽어 버리자 공원에다 암매장해 버렸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 질 수 있나를 보는 사건들이다.

살인의 방법과 수법이 너무 흉폭하고 잔인하여 이젠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이런 죄악을 저질렀겠는가?

자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우상숭배하고 물질만능주의로 이기주의로 쾌락주의로 온갖 죄악과 악행들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잔인한 것인가?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무자비하신 것인가?

여러분 죄는 전염성이 강하다고 수 없이 말해왔다. 죄악의 사슬을 저주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자신만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물들게 만든다.

선생님이 귤을 한박스 샀다. 너무 싸서 그런데 그 중에 썩은 귤들이 한두개 바닥에 이었던 모양이다. 박스체 놔두고 먹다보니 많은 귤들이 썩어 곰팡이가 피고 물러져 못 먹게 되었다.

그건 귤판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산 내가 잘못이다.

귤이 썩은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썩은 것은 골라내어 버려야 했다. 그랬다면 한 두개만 버리면 되는데 같이 그대로 방치하여 바닥에 깔린 많은 귤들을 버리게 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과 죄악에 물든 가나안 원주민을 한 곳에 두고 같이 살게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기브온 족속을 제외한 모든 가나안 거주민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들을 구분해 내지 않으면 이스라엘까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가나안 거주민들을 심판하지 않으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가나안 족속과도 같은 사탄의 종들이 함께 공존해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여호수아 때처럼 사탄의 종들을 말살하지 않고 두는가?

2가지 이유에서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시어

죄값을 치루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죽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어떠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앞서 말한 죄인들 이라 하더라도) 용서함을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오래 참고 계시는 것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심판 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며 이 세상 심판의 때가 가까워 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부가 밭에 곡식을 심었는데 원수가 그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가버렸다.

그래서 농부가 주인에게 모든 가라지를 지금 뽑을까요라고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잘못하다 곡식까지 뽑힐 염려가 있다.

추수 때가 되면 곡식은 알곡 창고에 가라지는 불 속으로 던져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죄를 가까이 하지 마라

죄는 자란다. 엄청나게 빠르게 자란다. 바늘도독이 소도독이 되고 3살 버릇이 여든간다.

사소한 죄라도 짓지 마라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 욕하고 놀리는 것, 장난치고 싸우는 것

이런 것들이 장난으로 시작하여 한 인간을 죽음으로 내 몰게 된다.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가 위궤양을 일으키고 위염으로 발전하고 위암으로 변하면

그때는 속수무책이다. 위암이 되기 전에 위염을 고쳐라 위염이 되기 전에 위궤양을 고쳐라

위궤양이 되기 전에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죄의 근원과 죄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 근본적인 처방전이 신약이고 구약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멈추지 마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 모든 것을 묶어 종합선물세트가 바로 예배이다. 예배는 죄에 대한 철저한 방어이며 영육을 건강하게 돌보는 자기관리이다.

예배가 죄에 대한 방어이고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전도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죄에 대해 공격이다

여러분들의 입에 여러분들의 부모친척친구이웃의 구원이 달려있다.

그래서 교회적으로 지금 뉴 페밀리 초청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70대 노인이 평생 처음으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감동과 감격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다. 여러분들도 체험해 보라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라 여호수아처럼, 승리는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여호수아처럼 사용하시려고 하는데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기적을 보고 승리를 맛보고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겠는가?

바다와 강을 가르시고 철옹성을 무너뜨리시고 해와 달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전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다.

여러분들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 여러분들로 인하여 여러분들의 가정이 저주에서 벗어나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학교가 저주에서 벗어나 살아나기를 축복하며 기원한다.